● 1928년 이왕직아악부의 현악연주 장면으로 다시 복원된 당비파, 향비파와 한 때는 맥이 끊긴 월금의 모습이 보여 이채롭다. 좌로부터 김득길(거문고), 명호진(가야금), 김천룡(당비파), 김칠복(향비파), 박성재(월금), 이병성(양금), 김천흥(해금). 관련메모(하루미),흑백,생산년도(시작) 1928년 후반 추정<심소 김천흥의 해맑은 삶&g...
● 이왕직 아악부의 음악인들이 별도로 조직한 정악전습소가 한국 최초의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에서 연주하는 장면이다. 당시 김천흥은 아악부의 직원이었다.좌로부터 장고 박영복, 노래에 이병성, 단소 최수성, 해금 김천흥. 관련메모(하루미),흑백,생산년도(시작) 1930년대 추정/ P1-PHO-102와 동일한 일시로 추정, 1930년 전반으로 추정한다. ...
● 아악이습회 제11주년 기념연주회, 아악부 일소당에서 일반공개로 개최하였다. 12곡이 연주되었는데, 사진 속 우측 팻말을 통해 <수연장지곡>이 연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인의 비파 연주자 모습이 보이는데, 그 중 한 명이 김천룡(김천흥의 형, 대금 전공 겸 비파)이다. 이 공연은 1943년 9월 23일에 김천룡의 넷째 딸 정혜가 사망하고 ...
● 서울 수복 이후 부산으로 피난했던 국립국악원이 서울로 옮겨 가자, 부산의 국악인들이 부산국악학원을 창립했다. 부산국악학원은 창립을 기념하는 국악강습회에 강습생들이 몰려 성황을 이루는 등 개원 초기부터 활기를 띠었다. 둘째 줄 좌측으로부터 2번째가 시조를 좋아하는 약방 南 씨 (성명 미상), 그림과 글에 능했던 도춘정, 4번째가 단소에 봉해룡, 무용에 김...
● 김천흥 무악동문회 주최 <심소 김천흥 무악생활 70주년 기념공연> 중의 김천흥. 춘앵전. 관련메모(하루미). 사진 관련 메모 유. 필름 유.* 1992년 9월 29일 첫째 날 '무용의 밤'은 김천흥의 70주년 기념공연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김천흥은 <춘앵전., <승무>, <살풀이> 에 출연했으며, 9월 30일 ...
● 1972년 9월 국악사양성소가 국립국악원과 분리되어 국립국악고등학교로 승격되었다. 앞줄 좌로부터 김태섭, 김성진, 이주환, 성경린, 김기수, 김천흥, 장인수, 둘째 줄 좌로부터 미상, 장정미, 박혜경, 이경주, 신태숙, 이성진, 안희봉, 김근섭, 박동순, 셋째 줄 이은자, 미상, 강경미, 미상, 안남훈, 이상규, 홍성곤, 이승노, 채병주, 넷째 줄 강신...
● 1980년 궁중무용 춤사위 중 대수 동작을 시연하고 있는 김천흥의 모습이다. 김천흥은 정재의 재현과 후진 양성을 위해 고령에도 정진을 다했다. 그는 회고록 에서 "내가 1955년 처음 무용연구소를 개소하면서부터 십수 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제법 바쁘게 밖으로 나다니며 여러 대학의 강의도 맡았고, 그 안으로는 국립국악원에서의 궁중무용 재현에도 ...
● 제40회 대한민국 예술원 정기총회를 마치고 예술원 회원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앞줄 좌로부터 4번째가 성경린, 그 옆이 김천흥(당시85세), 뒷줄(2번째 줄)좌로부터 2번째 앞이 김백봉, 우로부터 4번째가 차범석, 10번째가 김자경, 그 옆이 연극인 백성희, 뒷줄 우측 두번째 멜빵, 모자 착용의 좌로(오른팔 쪽으로) 김동원(연극인), 우로(왼팔 쪽으로)...